OJJ's TALKs

'정형사'에 해당되는 글 1건

  1. 소 네 마리 잡은 <식객> 정형사 조상구 (1)

소 네 마리 잡은 <식객> 정형사 조상구

News

“강편수는 제 실제 모습과 흡사합니다” / 유성희
작성일 : 2008-07-25
 

 



[인터뷰365 유성희] 지난 6월 17일 첫 전파를 탄 SBS드라마 <식객>은 단행본만 100만부가 넘게 팔린 허영만 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전통 궁중요리 후계자 자리를 두고 벌이는 치열한 승부를 담은 이 만화는 영화로 만들어져 흥행에 성공한 이후 다시 드라마로 만들어져 화제를 모으고 있다.

최근 드라마 <식객>은 ‘쇠고기 경합’을 거치며 안방을 후끈 달궜다. 그 중심에는 날 선 칼 하나 들고 묘기에 가까운 기술을 선보이며 좌중을 압도한 ‘정형사’ 강편수가 있다.

화제를 일으킨 강편수 역을 맡은 배우 조상구를 만났다. 뜻밖에 그는 방송국 근처가 아닌 자신의 집 쪽에서 만나자고 했다. 용인에서 양지로 넘어가는 길목, 물안개 자욱한 전원이었다. 아내, 장성한 두 아들과 함께 사는 그의 집 근처에서 인터뷰는 진행됐다.



그동안 강한 배역을 많이 해왔는데 이번 아버지 역도 참 잘 어울리시네요.

<식객>에서 처음으로 편한 역할을 해봤어요. 원래는 제 역할이 2회 분량 밖에 안됐는데 모두 강렬하게 정형하는 모습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강편수의 개인사를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8회를 하게 된 거죠. 집에서 원망을 사다가 결국 가장으로 인정받게 되는 과정이 추가가 됐어요. 제 생활하고 거의 흡사한 부분이어서 여느 역할보다 연기하는데 편안했어요.


실제로는 어떤 아버지이신가요?

좋은 아빠는 못된 거 같아요. 제가 원하는 대로 제 식대로만 살아왔기 때문이죠. 가족보다 제 자존심을 먼저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가족들한테 줬던 상처가 쉽게 없어지진 않아요. 애들을 보면 문득문득 예전 생각이 나는데 그때마다 미안함을 느끼죠.


 


전문적인 배역을 소화하기 위해 연습량이 상당하셨을 것 같습니다.

많이 했지요. 연습하는 데만 소를 네 마리 잡았어요. 정형하는 부분에서 대역을 쓰긴 했지만 정말 정형사답게, 프로답게 보이기 위해 칼 잡는 것 하나, 칼 가는 것 하나 제대로 보이기 위해 연습을 꾸준히 했어요. 도축장 견학부터 해서 칼 잡는 법까지 말이죠. 실제로 연습하다가 여러 번 찔리기도 했어요. 정형에 쓰이는 칼이 워낙 날카로워요. 그런 칼을 잡고 최대한 힘을 줘야하거든요. 순간 방심하면 그냥 나가요. 그래서 정형사분들이 대단한 거죠.


실제 만나본 정형사 분들은 어떠셨나요?

겉모습은 평범해요. 근데 손부터 어깨까지 꼭 해머를 만지는 것 마냥 탄탄해요. 연습을 위해 소가 마련되면 일단 각 부위를 설명해주고 난 후 가르는 방법을 알려줘요. 근데 이 분들이 가를 때 보면 근육하고 비계하고 베는 게 아니더라고요. 근육과 근육이 붙어있는 그 틈새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 결을 따라 움직이죠. 힘을 주되, 그 결을 느끼면서 움직여 나가는 거예요. 척보면 아는 거예요. 칼을 넣으면 이미 결속으로 들어가는 거죠. 귀신이에요. 등뼈를 발골할 때는 망치로 때리고 도끼로 치는데도 정확해요. 등심 뼈를 따라 움직이는 걸 보면 소리가 ‘까드득 까드득’ 소름끼치는데 하는 거 보면 그야말로 예술이죠.


이번에 정형사란 역할을 하시면서 새롭게 알게 된 점이 많으시겠네요.

소가 우리 입에 들어오기까지 깨끗하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소의 부위를 나눠 진공포장을 하는 데까지 보통 30분 정도 걸려요. 다 끝나고 나면 밑에 아무것도 없이 정말 너무너무 깨끗해요. 우리 축산협회에서 나오는 한우들, 정말 깨끗하다고 장담할 수 있어요. 몇 군데를 더 가봤는데 다 그랬어요.


정형시합장면은 정말 멋있었습니다.

제가 멋있어 보였다는 건 정형사가 멋있게 보인다는 말이거든요. <식객>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정형사분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만 조성됐으면 좋겠어요. 그거 말고는 바랄 게 없어요.


 


성찬 역의 김래원과 연기하는 장면이 많은데, 연기 호흡은 어땠습니까.

래원이는 정말 영악해요. 나이에 비해 정말 영악하다 싶을 정도로 연기를 잘해요. 사실 어린 친구들하고 연기할 때는 좀 힘들어요. 내가 구세대니까. 그런데 김래원과  할 때는 너무너무 좋았어요. 래원이도. “편수아저씨”라고 부르면서 꼭 친형처럼 대하듯 잘 따랐죠. 하하.



조상구는 이현세 원작만화를 이장호 감독이 영화로 만든 <이장호의 외인구단>으로 배우생활을 시작했다. 만화가 이현세와는 어린 시절 고향인 경주의 첨성대와 고분 등지를 함께 뛰놀던 단짝친구다. 그는 외화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19년간 1천5백여 편의 작품을 번역했으며, <레옹> <타이타닉> <밀리언 달러 베이비> 등 많은 흥행영화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최근에는 연기에 전념하기 위해 번역에서는 손을 뗐다.


<야인시대> 시라소니 역할이 대중적으로 가장 알려지시게 된 계기였지요?

그 이전에 오래 쉬고 있었어요. 배우에게 기다리는 시간은 참으로 고통입니다. 잘 알려져 있는 번역일도 저에겐 고문이었어요. 수많은 명화들을 보며 ‘내가 저 속에 들어가야 하는데’라는 생각에 괴로웠죠. 그러다가 시라소니 역할을 추천받아 감독님을 만났어요. 시라소니가 누굽니까. 모든 남자들이 한 번 쯤 맡고 싶은 배역이잖아요. 그런데 결과는 안 좋았어요. 감독님이 탐탁치 않게 여겼고 10분도 안돼 밖으로 나왔어요.


그런데 어떻게 다시 하시게 된 거죠?

두고두고 아쉬워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집사람이 시라소니가 이북사람이니깐 책을 사서 이북사투리를 연습해보라고 하는 거예요. 다 끝난 마당에 무슨 소리냐고 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에 집사람이랑 연습을 했어요. 그렇게 한 달 반이 지났을까. 밤늦게 전화벨이 울려요. 받아보니 <야인시대> 조감독이라고 하면서 시라소니 역에 확정 됐다고 내일 방송국으로 오라는 거예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눈물만 흘렸어요. (그는 이 대목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다음날 감독님을 다시 만났는데 “이북사투리는 좀 해요?”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연습한 걸 들려줬더니 감독님이 더 볼 것 없다고 당장 옷 맞추라고 합디다. 그때 ‘하.. 우리 마누라가 참 현명하구나. 역시 우리 마누라구나.’하고 느꼈죠. 사람들이 얘기하는 행운이라는 거 모르고 살아왔는데, 내 삶은 항상 불행의 연속이었는데 나에게도 행운이라는 게 존재하는구나 하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야인시대> 이후 모든 일에 감사하면서 살게 됐죠.



뵙기에는 세상에 두려울 게 없어 보이는 외모이신데, 혹시 무서워하는 게 있습니까.

없어요. 나는 그런 거 없어요... 아니, 하나 있죠. 주사. 바늘을 무서워해요. 결핵 때문에 42킬로까지 몸무게가 떨어져 봤는데 3년 반을 누워있었죠. 매일 주사를 맞았다고 생각해봐요. 지금도 주사보면 바들바들 떨려요. 그 당시 7년 동안 아무것도 못했어요. 집사람이 계속 날 먹여 살리면서 조금씩 회복된 거예요. 그때가 제일 힘들 때였어요. 나도 일은 해야겠고 애는 돌봐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촬영장에 애를 데리고 가면 심하게 모욕을 당하기도 했지요. 한번은 방송국 엑스트라로 뛰어다니면서 큰놈을 데리고 다녔는데 층마다 비상구가 있잖아요.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비상구 글자가 있으니깐 애가 하는 말이 가는데 마다 아빠 이름이 있대요. 아빠는 위대하니깐 다 아빠 이름이 있대. 참... 내가 그때 운 거 생각하면. 하하.


가족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신 거 같습니다.

전 아무것도 아니에요. 지금 조상구란 사람이 배우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어디 가서 ‘배우에 대한 꿈이 이렇다’하고 거창한 듯 얘기하지만, 가족이라는 틀에 비교하면 천만분의 일도 안돼요. 가족을 위해서 영화를 한다기보다 가족을 위해서 언제든지 버릴 수 있어요.(웃음) 집에는 이런 얘기를 하지도 않죠.


<식객> 이후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식객>에서의 제 출연분은 다 끝났고 당분간 쉬려 합니다. 다음 작품은 아직 결정된 건 없지만 아마 드라마 쪽이 될 것 같습니다.




가족 얘기를 할 때면 그의 눈은 가끔 촉촉하게 젖기도 하고 입에 미소가 떠오르기도 했다. <식객>의 정형사 아버지 강편수의 모습은 이런 그의 모습이 저절로 배어나온 결과인 것 같았다. 저녁까지 함께 하며 이뤄진 인터뷰는 편안했다. 이날 저녁 메뉴는 쇠고기가 아닌 오리고기였다.








기사 뒷 이야기가 궁금하세요?
인터뷰365 편집실 블로그